재림사역의 중심지_크리셀

       
     
 형상의 구원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

   제 6장 / 구원의 왜곡사

- 창조의 핵심과 목적이 빠진 창조론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서 사도의 창조론과 그 핵심은 소외되어 왔다. 이는 교회가 이레니우스의 창조론 대신에 터툴리안의 창조론을 교회 창조론의 규범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터툴리안의 창조론은 태초의 6일 동안의 창조 사실만을 증거하는 창조론이다. 따라서 그의 창조론에는 창조의 목적이나, 창조와 구원과의 관계, 창조와 종말과의 관계 등에 대한 내용들이 증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적이 어떻게 역사 안에서 구원을 통하여 성취되는지에 대한 설명들이 없다.

   터툴리안의 창조론은 하나님의 창조의 핵심과 목적이 유실된 창조론이다. 교회는 지난 1,800여년 동안 이러한 창조론을 교회 창조론의 모범으로 견지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터툴리안의 잘못된 창조론은 창조론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창조론의 문제는 곧바로 구원론의 문제로 이어진다. 창조의 목적이 빠진 창조론은 구원의 목적이 빠진 구원론을 파생시키고 마는 것이다.


- 구원의 핵심과 목적이 빠진 구원론

   태초의 창조가 그 자체로 완결된 상태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향해 출발한 상태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타락과 구원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만일 터툴리안의 관점대로 태초의 창조가 완결된 상태였다면 아담의 타락은 완결된 창조를 훼손시킨 것이 되며 구원이란 아담이 훼손시킨 창조를 회복하는 회복의 의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창조가 또 다른 목적을 향한 출발이었다면 아담의 타락은 창조를 훼손시킨 것만이 아니라 미래적 목적까지 좌초시킨 이중적인 훼손이 되고 만다. 그럼으로써 구원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구원은 아담을 태초의 무죄한 상태로 회복시킬 뿐만아니라 또한 아담이 이루었어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이 점에서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의 구원론은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터툴리안은 구원이란 아담이 훼손한 창조를 회복하는 것이라 보았기에 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하는 것을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비해 이레니우스는 구원이란 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할 뿐만아니라 그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었던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이루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레니우스의 '창조-구원론'을 버리고 터툴리안의 '창조-구원론'을 견지하였다. 그래서 구원이란 아담이 지은 죄를 해결하는 죄 사함의 은혜를 구원이라 생각하였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이 구원의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는 죄사함의 세례를 받은 자를 구원받은 자와 동일시 하게 되었다.

   세례 = 구원’이라는 도식은 어거스틴에 이르러 더욱 확고해졌다. 어거스틴은 세례받은 자를 구원받은 자로 보았을 뿐만아니라 선택받은 자로까지 보았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인 은총론에서 누구든지 세례받은 자이면 그는 구원받은 자요 창세 전부터 택함을 입고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라고 주장하였다.


- 죄 사함 받은 이후의 죄 문제에 발목잡힌 중세

   “세례받은 자 = 구원받은 자 = 창세전에 예정된 자”라는 도식은 어거스틴에 의해 정립되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도식으로 구원론(은총론)을 집대성하고 그것을 중세교회로 넘겨주었다. 비록 중세교회는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반어거스틴주의의 형태로 수용하였지만 “죄 사함의 세례 = 구원”이라는 도식은 그대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세례 이후에도 계속하여 죄를 짓는다는 사실에 있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성도들이 짓지 말아야 할 죄-이른바 용서받기 어려운 세 가지 죄가 있었다. 살인, 간음, 배교가 그것이었다. 처음에 교회는 일생에 한 번 공적참회를 통해서 대죄(大罪)를 사함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세례 이후에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여 세례받는 시점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죄를 지을 시간이 거의 없는 노년의 때에 세례를 받으려 하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가 그 좋은 예였다. 황제는 죽기 전에 세례를 받음으로 생전에 지은 자신의 죄를 한 번에 청산하고 이후에 죄지을 것에 대한 염려없이 구원받은 자가 되고자 하였다.

   일생에 한 번만 허용되는 공적참회가 시행되면서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현실적으로 신자들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여러 죄들을 범하기 때문에 참회를 여러번 행하는 자도 있었고 대죄가 아닌 작은 죄들에 대한 참회의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사적참회의 제도가 생겨났는데 이것은 공적참회보다는 덜 엄숙하고 여러번 행할 수 있는 것으로써 대 바질리우스(Basilius d. Gr., 329-379)에 의해 헬라의 수도원에서 처음 행해진 것으로써,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사면을 받는 '개인의 고해'(Privatbeichte)였다. 이것은 6-7세기에 아일랜드의 선교사들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에 전해지면서 카톨릭 전체로 확산되었다.

   카톨릭 교회는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경우에 죄에 상응하는 보속(補贖, penance)의 행위를 조치하였다. 보속이란 보상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신자가 참회를 할 때 죄는 용서받지만 그 죄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거나 죄를 덮을 수 있는 선행을 하여 다시는 죄를 범치 않도록 치료하는 의미로 행해진 것이었다. 이같은 보속 교리에 따라 서방교회는 신자들이 적절한 보속행위를 하도록 죄의 종류를 구분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속의 행위를 규정한 참회서(고해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보속의 행위를 상세하게 규정하면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첫째는 보속을 미처 실행하기 전이나 보속을 실행하는 도중에 죽은 자들의 구원 문제였다. 이를 위해 교회는 보속의 행위를 미처 이루지 못하고 죽은 자들에 대해 형벌을 겪는 장소를 가정하고, 그러한 형벌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카톨릭은 연옥이라는 교리를 합법화하였다.

   또 다른 문제는 사람들이 죄에 대한 보속을 미처 행하기도 전에 또 다른 죄를 연이어 짓게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죄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서방교회는 공로의 보고(寶庫)라는 새로운 교리를 만들게 되었다. 공로의 보고는 가령 참회를 한 사람이 보속의 대가로써 순례를 요구받았으나 생업이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순례를 할 수 없는 경우 다른 사람이 대신 하도록 하거나 그 비용을 냄으로써 보속의 효과를 얻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로의 보고는 양도가 가능한 것으로도 규정되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공로를 빌리거나 잉여의 공로가 많은 성인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보속을 사면받고자 하였다. 이같은 공로의 보고는 심지어 돈을 주고 사고 팔기도 하였는데 16세기의 교황 레오10세는 베드로 성당의 신축관계로 많은 자금이 필요함으로 면죄부(면벌부)를 만들어 잉여의 공로를 팔아 자금을 구하려 하였다.

   교황 레오10세의 잉여 공로의 판매는 그 유명한 면죄부 판매 사건이 되어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루터는 죄를 씻는 것이 인간의 선행이나 어떤 보속이나 잉여의 공로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라는 성서의 진리를 깨닫고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루터 자신도 한 때 끝없는 보속의 행위에 고통하며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려 무릎으로 수도원 계단을 오르내리던 자였다. 그러나 루터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로마서의 말씀을 통하여 죄의 근본적이고 영원한 해결은 공로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만으로 가능하다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카톨릭의 오류로부터 벗어나 성서가 말하는 믿음의 의로써 중세 구원론의 어두움에서 빠져 나오려 하였다.


- 루터는 죄 사함의 구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루터는 카톨릭의 오류에서 빠져나오기는 하였으나 어거스틴의 구원론의 한계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였다. 루터는 믿음에 의한 구원을 말하였지만 그가 말한 구원의 정확한 의미는 터툴리안이나 어거스틴처럼 죄로부터의 구원 곧 죄 사함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참회와 보속에 의한 구원을 ‘믿음에 의한 구원’이라는 말로 바꾸었을 뿐 죄의 해결로써의 구원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루터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가 하는 법적 신분의 회복으로써의 구원, 인간이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창조의 회복으로써의 구원으로써의 의미를 찾은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의 구원론에는 둘째 창조의 의미가 빠져 있고 구원의 완성에 대한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루터의 구원론에는 행위가 제거된 오직 믿음만의 구원 혹은 성화가 배제된 오직 칭의만의 구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루터는 믿음과 행위 간의 균형을 논하며 행위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 말하는 야고보서에 대하여 쓰레기 서신이라고 혹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단지 창조의 회복의 의미로 이해하는데 그쳤던 것이다.


- 지금도 계속되는 구원론의 문제

   터툴리안으로부터 시작된 창조의 회복으로써의 구원의 의미는 어거스틴, 카톨릭, 루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저들의 구원론은 창조의 회복하는 죄 사함의 구원이 그 핵심이며, 죄책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기에 구원은 칭의 혹은 세례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성화나 온전한 순종이나 성령의 열매나 사랑 등은 구원을 받는 여부와 상관이 없는 옵션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좋지만 설령 없다 하여도 구원을 받는 여부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원론은 현대의 교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교회들 역시 구원의 기준은 칭의 뿐이다. 칭의 곧 죄 사함의 은혜만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며 그 외에 성령의 열매나 온전한 믿음이나 거룩한 성화 등등은 구원여부와 관계가 없이 상급에만 관련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만일 오늘날 사도요한이나 이레니우스가 살아 있다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요한은 의를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께로 난 자며(요일2:29),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라 하였다.(요일3:10) 요한복음에서도 무릇 주 안에서 열매맺지 못하는 신자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요15:2), 과실을 많이 맺는 자가 참 제자라고 증거하였다.(요15:8)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 죄를 지으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다.(요일1:6)

   사도요한은 죄 사함만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누구든지 그에게 열매가 있고 사랑이 있고 의를 행하는 순종이 있으면 그는 거듭난 자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하였다. 요한이 가르치는 이러한 구원이 바로 구원의 본질이요, 구원의 핵심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온전한 구원을 구원의 핵심으로 이해하였기에 이같은 말을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요한이 가르친 구원론 대신 단지 창조의 회복에 그치는 죄 사함을 구원의 구원이라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창조와 구원의 핵심을 제거한 구원론에 불과할 것이다.





찾아오시는길 | 예배안내 | 재림14강 | 성경공부 | 도서안내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117-10
연락처 : 010 - 3472 - 4728 | Email : ccarmoon@hanmail.net
Copyright All right reserved www.cres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