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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 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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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장 / 돌트 회의

- 베자의 '타락전 예정론'

   칼빈 이후 그의 예정론은 칼빈의 후계자였던 베자(Theodore Beza)에게 계승되었다. 베자는 스승인 칼빈의 이중예정론을 충실히 계승하였으며 거기에 다시 ‘타락전 예정’이라는 개념까지 추가하였다. 하지만 베자가 추가한 ‘타락전 예정’이라는 교리 역시 이미 어거스틴이 주장한 예정론 안에 있던 것을 끄집어 낸 것에 불과하였다. 베자는 단지 그것에 명칭을 덧붙여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베자에 의해 타락전 예정론이 설파되는 즈음에 예정론은 코른헤르트(D. V. Koornheert)라는 카톨릭 신학자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당시 코른헤르트는 예정론에 반대하는 글을 네델란드 정부에 제출하고, 강연과 저술을 통해 예정론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이에 위기를 느낀 베자는 자신의 제자 중에 논리와 토론에 뛰어났던 라이덴 대학의 교수인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에게 코른헤르트의 논리를 반박하도록 소임을 맡기게 된다.


- 알미니우스의 '의지예정론'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살피는 한편 예정론의 핵심장이라 할 수 있는 롬9장을 심도있게 연구하였다. 그러나 알미니우스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논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예정론을 수용하기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정론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던 알미니우스는 급기야 예정론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급선회하고 말았다.

   베자에게 타락전 예정론을 배웠고 한 때 그의 제자였던 알미니우스는 이제 베자의 적(敵)으로 돌아섰다. 논리적이며 양심적이었던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에 나타난 논리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것이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과 충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알미니우스는 결국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드는 교리이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파괴하는 것임을 주장하며 예정론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알미니우스가 예정론을 반대하며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예지에 의한 조건적 예정, 즉 ‘예지예정론’이었다. 예지예정론은 하나님이 믿을 자를 예지하시어 그의 믿음을 보고 예정하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도리어 알미니우스의 한계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만일 알미니우스의 주장처럼 예지예정이 될 경우, 구원은 인간의 의지와 선택적 능력에 의해 좌우하는 것이 되며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에 휘둘리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알미니우스는 상식적인 선에서는 예정론의 모순과 문제점을 알게 되었지만 예정론을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성경적, 영적 대안을 찾는 일에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의 문제점을 직시하였지만 그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 돌트회의와 '타락후 예정론'

   1609년 알미니우스가 죽자 그를 추종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모여 예정론에 반대하는 5개 항목의 항의서한을 만들어 네델란드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에 반발한 칼빈주의자들은 1618-19년에 돌트회의(the Synod of Dort)를 소집하여 예정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 때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피고인으로 고발되어 죄인 취급을 받았기에 회의에 참석할 권리도 없었고 당연히 발언할 기회도 갖지 못하였다. 그 때 다수의 칼빈주의자들이 모여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였고 회의 후에 알미니안주의자들을 모두 참수, 투옥, 파면 내지는 추방하였다.

   돌트회의는 154회의 공식회의 끝에 알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을 정죄하고, 오늘날 튤립(TURIP)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칼빈의 5대 교리를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하였다. 또 한편으로 ‘타락전 예정론’과 ‘타락후 예정론’에 대한 논쟁을 벌여 그 결과로 ‘타락후 예정’을 예정론에 대한 최종 결론으로 발표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왜 돌트회의는 난데없이 그 때까지 논의된 바 없던 ‘타락후 예정론’을 지지하고 발표한 것일까?

   그 이유는 예정론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아무 이유없이 저주받을 자를 예정하시므로 그런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은가 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교리다. 이 비난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타락전 예정’이 아닌 ‘타락후 예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타락후 예정을 주장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이 있은 후에 예정을 하신 것이 되기에 유기의 책임이 인간에게 돌아가고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다는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다.

   결국 돌트회의는 예정론이 갖는 맹점을 피하기 위해 고육책으로 ‘타락후 예정론’을 지지한 것이었다. 그런데 돌트회의의 타락후의 의미는 실제적인 역사상의 타락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심중에 있던 작정의 순서로서 타락후를 의미한다. 그래서 돌트회의가 말하는 타락후 예정이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창조작정-타락작정-예정작정”의 순서로 결심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돌트회의가 발표한 타락후의 의미는 실제 시간상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하나님의 심중에 일어났던 결심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돌트회의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인간의 타락을 작정하신 후에 예정을 작정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결코 불의하지 않다는 논리를 펼치게 되었다.

   하지만 타락후 예정론은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성경에는 하나님이 타락 작정 후에 예정을 하셨다는 것에 대해 언급된 말씀이 없다. 더욱이 그것이 창세 전 하나님의 심중에 있었던 작정이라고 한다면, 도데체 인간이 창세 전에 하나님의 심중에 있었던 작정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혹 하나님이 그리하셨다 하여도 성경은 물론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논리를 어떻게 믿고 지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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