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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 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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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 어거스틴의 예정론

- 어거스틴이 예정론을 처음 주장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정론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그 교리를 정립한 사람은 어거스틴(Augstine)이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Pelagius)와 구원론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예정론의 문제를 촉발시켰다.

   AD 5세기 초,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구원 문제를 놓고 서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그 때 펠라기우스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고, 어거스틴은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만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말한 ‘오직 은총’의 의미는 ‘오직 예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직 창세 전에 예정된 자만이 오직 은총을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예정론의 교리를 대두시키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 교회는 529년 오렌지 회의를 통해 펠라기우스를 정죄하고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수용하였지만, 그의 예정론이 전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오렌지 회의는 불가항력적 은총이나 예정의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반(半)어거스틴주의의 형태로 어거스틴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그 후 중세 천년의 시간 동안 어거스틴의 예정론은 점점 잊혀지다가, 드디어 종교개혁과 칼빈을 통해 다시금 절대예정론의 형태로 부활하게 되었다.


- 예정론을 주장하게 된 배경

   어거스틴이 예정론을 제시하게 된 이유는 그가 쓴 은총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은총론에서 말하기를,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 누구는 믿고 구원받는데, 왜 누구는 그렇지 못한가?"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그가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이같은 사유를 근거로 어거스틴은 구원은 오직 은총에 의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원인은, 오직 창세 전부터 구원받기로 선택된 '예정'(predestination)에 근거한다고 답하였다. 이로써 사람이 구원을 받는 원인은 다름 아닌 창세 전의 예정에 의한 것이라는 예정론의 교리를 주창하였다.


- 믿음의 시작과 예정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 달리, 인간의 의지가 믿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론을 믿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였고 그와 함께 자유의지도 타락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타락한 자유의지는 구원에 대한 어떤 선한 의지를 가질 수 없으며 믿으려는 의지조차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거스틴이 볼 때 인간이 믿는 의지를 갖는 것은 자유의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었다. 먼저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치유할 때, 인간은 비로소 그 치유된 자유의지를 통해 믿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거스틴의 입장이다. 이런 연유로 어거스틴은 “믿고자 하는 의지는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나며,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속에 믿음을 선물로 주입시킴으로써 믿음을 시작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 의하면 믿음을 시작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며 오직 예정된 자만이 믿음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창세 전부터 예정된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만이 믿음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누구든지 믿음을 시작한 자는 이미 예정된 자라고 주장하며, 믿음의 시작과 예정을 동일시하였다.


- 구원받지 못한 자도 믿음을 시작한다

   그러나 오직 예정된 자만이 믿음을 시작한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도 얼마든지 믿음을 시작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뿌리는 비유 중에 바위에 뿌려진 씨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는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눅8:13)라고 설명하셨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이뿐 아니라 성경은,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4:1),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딤전5:12)는 말씀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시작할지라도 그들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주장과 달리 예정받지 못한 자도 얼마든지 믿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믿음의 시작을 끝까지 견인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예정에서 떨어진 자라고 변호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어거스틴은 "믿음에서 떨어진 자는 어떻게 예정되지도 못했는데 믿음을 시작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대답을 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말이 없다. 필자가 어거스틴의 책들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그의 책에는 이런 부분들이 많다. 어거스틴은 무언가 자신이 말하지 못하거나 불리한 부분이 있으면 그 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 예정의 가장 큰 증거?

   사실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논리에는 허술하고 엉터리같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그런 점들이 제대로 비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은 예정론을 주장하면서 예정의 가장 큰 증거는 "세례받은 유아와 그리스도"라고 거듭해서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아니, 세례받은 유아라고 해서 장차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어찌 단정하며 어찌 세례와 예정을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가! 유아세례를 받은 이후에 타락하는 자가 얼마나 많으며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도 부지기수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세례받은 유아를 예정된 구원을 받은 대표적인 증거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또한 그리스도를 예정의 가장 큰 증거라고 하는 것도 문제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체이지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구원받기로 예정된 인간이 아니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의 대표적인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어거스틴이 주장한 예정론의 모순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지면상 그 내용을 다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이 정도로 그치며 이제 칼빈의 예정론으로 논점을 옮겨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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