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사역

       
     
 분열의 세계관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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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장 / 세계관의 시작

- 기독교 세계관의 태동 배경

   중세 1,000년의 유럽은 인간 이성이 신앙에 종속된 시기였고, 사회는 교회가 중심이 되는 봉건적 공동체였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의 출현과 함께 인간 이성은 신과 교회로 둘러쳐진 중세를 탈출하게 되고 탈종교화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게 되었다. 인간 이성은 과학과 기술로써 힘을 축적하고 문화의 영역을 새로이 구축하면서 드디어 자신만을 위한 근대도시를 건설하는 위용을 갖추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인간은 더욱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화(都市化)를 급속히 확장시켰다. 도시의 확장은 이성과 과학을 통해 이룩한 인간 능력의 놀라운 업적이었다. 이로써 서구에서의 인간은 과학의 힘과 그 찬란한 기술문화로써 더 이상 교회의 간섭이 필요없는 탈종교화된 '세속도시'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세속도시’가 출현하면서 서구사회는 산업과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는 후(post)기독교시대를 맞이하였다. 세속도시로 인한 탈기독교시대의 도래와 현대 문화의 급류가 몰아치자 충격을 받은 것은 교회였다. 교회는 인간이 만든 세속도시의 위용에 놀라며 그 세속문화의 현란함에 뒷걸음질쳤다. 단순히 교회의 하부구조에 불과하다고 여긴 세속문화가 그 막강한 위력을 키워 교회를 외부로부터 위협하는 것에 대해 교회는 당황하였다. 그 때까지 교회는 문화 혹은 세속문화에 대한 성경의 규범이나 문화를 포용할만한 성경적 세계관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교회는 세속문화의 거대한 급류에 잠식될 위험에 처하였다.

   서구교회는 20세기를 눈앞에 두고야 비로소 자신이 신앙 우위의 이분법에 빠져 인간과 문화와 능력을 과소평가하였음을 깨우치게 되었다. 교회가 구원과 영혼의 문제에 치우쳐 세속문화를 아우르는 균형있는 세계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급속하게 성장한 세속문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독교적 삶의 원리들을 마련하고 문화에 대한 성경적 규범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 기독교 세계관의 촉발 / 아브라함 카이퍼

   교회로 역류하는 세속문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새로운 기독교의 삶의 원리를 마련하고 문화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대응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20세기초 화란의 수상이자 신학자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1837-1920)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카이퍼는 1898년 10월,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 Theological Seminary)의 스톤강좌(Stone Lectures)에서 서구교회가 부딪힌 난제들, 곧 교회의 문화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으며 그 대안으로써 칼빈주의(Calvinism)의 기독교 원리를 제시하고 칼빈주의야말로 세속문화에 맞서는 성도의 강력한 삶의 체계(Weltanschauung:세계관)임을 주장함으로 기독교세계관 운동을 촉발시켰다.

   다방면의 어마한 경력을 가진 카이퍼는 이원론적 사고에 갇힌 경건주의 신자들에게 과학, 예술, 정치 등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도록 일깨우고자 하였다. 카이퍼는 개인적 헌신이나 단순한 영혼구원에 지우친 신앙을 반대하며 개인은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사회문화적인 영역으로 확대”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성도는 신앙과 문화를 통합하는 균형있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카이퍼는 칼빈주의(Calvinism)가 이러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가장 명료하게 나타냈다고 보았으며 칼빈주의 정신을 새롭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진정한 칼빈주의자는 사회문화적 분야들을 세상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며 그렇다고 비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문화활동에 참여해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오히려 기독교인은 각각의 분야에서 사회문화적 책임을 다하며 문화의 총체적인 국면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건설되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 일반은총론과 문화적 낙관론

   당시까지만 해도 문화에 대한 마땅한 기독교적 관점이 부재한 가운데 카이퍼는 문화에 대한 성경의 근거로써 ‘일반은총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일반은총이야말로 타락에도 불구하고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죄를 억제하며 문화를 발전시키는 성경적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카이퍼에 의하면 일반은총은 아담의 타락시에 역사하기 시작한 것으로써 소극적으로는 타락으로 인한 죄와 죄의 결과를 제어하며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문화를 형성하는 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은총은 죄의 근원을 제거하거나 타락된 창조를 완전히 회복치 못하며 단지 그리스도의 구속-특별은총을 예비하는 기초가 될 뿐이라고 말하였다.

   카이퍼에 따르면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위한 무대다. 카이퍼는 창조를 유지하는 일반은총은 구원을 성취하는 특별은총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핵심적인 두 축이라고 보았다. 일반은총은 창조세계를 보존함으로 특별은총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며 역으로 특별은총은 창조를 회복함으로 일반은총을 완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따라 카이퍼는 일반은총으로 인한 문화들은 특별은총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문화적 업적이 되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따라서 카이퍼는 이 땅에 형성된 문화적 업적은 사라지고 불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에 편입되는 것이라는 “문화적 낙관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계21:24절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로 그리로 들어오리라”는 말씀이 곧 열국의 문화적 영광이 하늘의 새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문화의 낙관론을 주장한다. 이처럼 카이퍼는 일반은총에서 문화의 근거를 찾고 특별은총이 부가됨으로 문화까지 완전해 질 수 있음을 주장하며 교회의 문화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나아가 두 은총 사이의 관계를 일치시킴으로 땅과 하늘, 창조와 구원을 일치시키고 신앙과 문화를 아우르는 통일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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