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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의 창조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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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어 / 창조론의 치유와 회복을 위하여

   창조는 기독교의 가장 중대한 기초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알아야 할 것은 창조란 구원을 포괄하는 전 성경적인 의미라는 사실이다. 태초의 창조의 목적은 창세기 1장에서 성취되지 않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종말적으로 성취되는 것이며, 창조의 완전한 영광 역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시적으로 보려면 반드시 창조의 관점을 따라야 하며, 구원의 결국과 완성 역시 창조의 궁극에 일치하고 조화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단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구원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단은 복음의 초기부터 교회 안에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가라지를 뿌려 놓았다. 영지주의는 하나님의 창조를 훼방하기 위한 초기 기독교의 가장 위험스런 이단이다. 순교자 폴리갑은 "나를 아시오" 라고 묻는 영지주의자 마르시온을 향해 "땅에 내려온 사단의 맏아들이 아닌가" 라고 답할 정도였다. 영지주의에 대한 언급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나타난다.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은 최초의 기독교 영지주의자였으며, 초대교회 일곱집사 가운데 한 명인 니골라(행6:5)는 계2장에 나타난 니골라당을 만들어 영지주의의 한 분파를 형성하였다. 또한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요한1,2,3서, 계시록을 통하여 영지주의의 이단성을 경고하였으며 적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에 왔는데 그가 곧 육체로 임하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영지주의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지주의 이단성의 뿌리는 이원론(dualism)에 있다. 대표적 영지주의자인 마르시온(Marcion)은 우주를 영과 육이 대립하는 이원론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세계가 플라톤이 말하는 물질의 신인 데미우르고에 의해 창조된 것이므로 저급하고 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그리스도를 보내신 신이야말로 최상위의 영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구약의 창조의 신은 저급한 물질의 신이며 신약의 신은 모든 영들의 절대 지존에 해당하는 참된 신이다. 마르시온은 이러한 이원론을 교회에 도입함으로써 창조와 구원을 분열시키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열시키며, 율법과 복음을 분열시킴으로 성경의 진리 전체를 분열시키는 음모를 획책하였다.

   창조세계와 물질을 악하게 본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신 것을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영적인 존재가 육체와 결합한다는 것은 곧 영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육체에 임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를 입으신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였다.

   간단한 내용같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진리를 파괴하는 강력한 독소가 되는 것으로 기독교를 내부적으로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세계를 영과 육으로 분열시켜 하나님의 창조를 저급하고 악한 것으로 폄하시킨다. 그런 다음 창조가 악하다는 것을 핑계하여 창조로부터 구원을 분리하여 구원을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 격상시킨다. 그러면 창조세계는 무가치한 것이 되고 구원만이 중요한 목적이 되어 버린다. 구원은 한없이 신령하고 거룩한 것이 되어 알 수 없는 신비적인 영역이 되어 버린다. 영지주의는 이러한 혼돈을 만들어 자신들만이 비밀스런 영지(영적지식)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들을 믿어야만 영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속임수를 쓰고 있다. 그럼으로써 창조의 본질을 폄하하고 그 안에 담긴 창조의 목적을 파괴함으로써 구원의 목적까지 잃게 만들었다. 창조의 목적과 분리된 구원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영지주의는 그들의 이원론으로써 창조와 구원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만들어 창조와 구원과의 관계를 완전히 분열시켰던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이원론의 속임수가 오늘날에도 은연 중에 교회 안에 스며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 때 융성했던 역사적 영지주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의 전면적인 대응으로 3세기를 지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문제는 영지주의가 주장했던 '이원론'의 해악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 이원론의 해악은 초기 기독교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결코 사라진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과거의 거친 이단의 모습 대신에 기독교에 부드럽게 친화된 교묘하고 위장된 모습으로 그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뿐이다.

   그 위장된 모습의 일부분이 어거스틴의 창조론 안에도 투영되어 있다. 어거스틴은 창조의 범주를 현격하게 축소시키고 그것을 자연의 영역과 동일시하였다. 그는 창조를 구원에 일치시키는 대신에 자연에 일치시킴으로써 창조의 의미를 땅, 자연, 세상의 영역으로 국한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구원을 하늘, 영혼, 영의 영역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은연 중에 창조를 구원의 하부 영역으로 여기도록 하였다. 창조가 구원의 하부적 토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견 맞는 것이지만 그러나 창조의 외형만이 그러해 보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볼 때 창조의 본질이나 목적은 구원의 본질이나 목적과 같다. 창조와 구원은 본질적으로 동격인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조를 구원의 하부영역으로 폄하시키고, 창조와 구원간의 일치하는 관계를 분리함으로써 이원론의 독소가 유입되는 길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창조를 땅에 속한 일로, 구원을 영혼에 속한 일로 분열시키고 말았다. 이제 교회는 이러한 창조와 구원간의 왜곡된 관계를 바로 잡고 창조와 구원이 일치하는 관계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레니우스의 창조론을 통해 창조론의 본질을 제대로 회복해야 한다. 창조의 통시적 의미와, 창조와 구원의 일치된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구원론을 회복하여 진리에 대한 사도적 전통을 오늘의 교회 안에 새롭게 전승해야 할 것이다.

< 본 글들은 필자의 저서 '사도의 창조론'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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