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스사역

       
     
 사도의 창조론

           서론 | 1장 | 2장 | 3장 | 4장 | 5장 | 6장 | 7장 |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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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장 / 어거스틴의 창조론

1. 헬라 철학과의 대치

   터툴리안의 창조론을 교회 창조론의 모범으로 정착시키고 그 내용을 확증한 사람은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었다. 어거스틴 당시 교회는 헬라철학과 조우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이교적 창조설과 대치 중이었다. 어거스틴은 헬라철학이 제시하는 우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나 마니교가 주장하는 선과 악에 대한 창조설화 등 성경의 창조를 왜곡하는 주장들에 맞서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거스틴은 성경의 창조사실을 변증하기 위하여 힘을 기울였고 헬라철학에 내재된 비신앙적 요소들을 타파하고 기독교 창조론의 우위를 변증하고자 하였다.

   헬라철학은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근원(arche)를 물었던 것으로 출발한 철학이다. 어거스틴 시대의 헬라철학은 세계의 근원에 대해 플라톤이 제시한 형성설(formation theory)과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누스가 제시한 유출설(emanation theory)을 받아 들이고 있었다. 플라톤의 형성설은 그가 저술한 티매우스(Timaeus)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티매우스에 의하면 태초에 ‘데미우르고'라는 신과 ‘무형의 질료(質料)', ‘이데아' 이렇게 세가지가 선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데미우르고’라는 신이 무형의 질료를 이데아에 의해 가능한 좋게 형성한 것이 이 세계의 출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출설은 3세기 애굽에서 태어난 플로티누스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써, 세계는 본래적이고 영원한 초월자인 일자(一者)로부터 단계적으로 유출된 것이라고 한다. 플로티누스에 의하면 우주에는 하강과 상승의 두가지 운동이 있는데 세계는 일자의 하강운동에 의해서 계층적으로 유출되었으며, 제일 먼저 일자로부터 정신(nous)이 유출되고 이 정신에서 세계의 혼과 인간의 혼이 유출되었고 단계적으로 하층적인 땅의 물질들이 유출됨으로 세계가 출발하였다고 말한다.

   이같은 헬라철학의 우주론은 여러모로 보아 성경의 창조론과 무관하다. 플라톤이 말하는 신은 질료를 통해 새로운 것을 형성하는 신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부터는 창조하지 못하는 신이며 동시에 선재하는 질료에 의해 제한을 받는 불완전한 신이기도 하다. ‘데미우르고’라는 신은 창조를 한다는 점에서 성경의 하나님과 비슷하다고 하나 본질적으로는 전능하지 못한 낮은 신이다. 또한 플로티누스의 신 개념인 일자(一者) 역시 완전하고 유일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창조하지 못하고 유출하는 신이며 일자로부터 유출된 만물들은 모두 범신적인 존재가 되기에 성경과 대치된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형성설과 유출설을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세계는 당신에 의해 무(無)로부터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나온 것(유출설)도 아니요, 당신이 아닌 어떤 물질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형성설)도 아닙니다."


2. 세 가지 창조 변증

   성경의 창조에 대한 어거스틴의 변증은 크게 세가지로 제시되었다. 첫째는 "무(無)로부터의 창조"다. 성경에 의하면 이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무(bara)로부터 창조된 것이며 따라서 어거스틴은 고백록을 통해 하나님은 절대적인 무의 상태에서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증언하였다. 이러한 무(無)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 만이 근원적이고 완전한 존재자이며 인간은 다시 무로 돌아갈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임을 가르쳐 준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서 유(有)의 존재가 됨을 역설한다.

   둘째로 어거스틴은 창조가 "삼위 하나님의 창조"임을 변증하였다. 어거스틴은 창1:1절을 그리스도를 지향하여 해석한다. 어거스틴에게 그리스도는 창조의 말씀이며 창조의 원리다. 또한 창1:2절에 나타난 '흑암 중에 운행'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언급함으로 이 세계가 성부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으로 창조된 하나의 세계인 것을 증거한다.

   셋째로 어거스틴은 "선한 창조"를 변증하였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는 말씀을 인용하여 "선하신 하나님이 선한 피조물을 만든 것이 창조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다만 창조주의 자유의지와 그의 선하신 은총에 기인하고 있는 선한 창조라고 변증하였다.


3. 천사 창조론

    그런데 어거스틴은 터툴리안의 '완결창조론'을 보호하는 위와 같은 세 가지 ‘창조 변증’ 만으로 창조에 대한 모든 논의를 끝낼 수 없었다. 완결창조론은 창조 사실만을 언급할 뿐, 창조와 구원 혹은 창조와 역사, 창조와 종말 등이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창조가 여타 성경의 다른 주제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했는데, 그것을 자신의 저서 신국론을 통해 설명하기에 이르른다.

   어거스틴은 신국론을 저술한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당시에 로마는 알라릭 왕이 이끄는 고트족에 의하여 약탈 당함으로 입은 재앙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재앙에 대해 그리스도교에 책임을 돌리려고 하며 예전보다 더 격렬하고 심하게 참되신 하나님을 모독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나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정에 불타서 그들의 모독과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하여 신국론을 저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신국론은 이처럼 로마의 멸망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신국론에서 어거스틴은 전체 인류를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한 쪽은 땅의 도성에 속한 사람들로서 장차 형벌을 받도록 유기된 자들이고, 다른 쪽은 하늘의 도성에 속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선택 가운데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이다. 어거스틴은 땅의 도성은 인간에 의한 도성에 불과하기에 멸망을 거듭할 수밖에 없으며, 종말적으로 땅에 속한 것은 아무리 거대한 도성일지라도 예정된 멸망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였다. 그리하여 로마의 멸망 역시 땅의 도성에 속하였기에 멸망한 것이지 그리스도교 때문에 로마의 신들이 분노하여 멸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변증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의 신국론이 하나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그 전체적인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창1:3-5)"는 말씀이다.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나는 하나님이 빛을 만드셨다는 것은 천사들을 창조하심을 말하며,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신 것은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을 나눈 것이라고 제창한다" 그러면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빛이라 불리우는 천사를 창조하셨을 때는 즉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표현하셨지만, 빛과 어두움을 나눈 후에 그러한 말씀을 하지 않은 것은 악한 천사를 따로 분리하는 일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두 천사의 분리가 하늘 도성과 땅의 도성이 나뉘는 근거이고 인류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시작이며 역사와 구원의 전체 향방을 결정 짓는 중대한 출발점이라고 주장하였다. 곧 창조의 시초에 두 천사가 분리됨으로 인류도 두 부류로 분리되었으며 세계의 마지막에 이르러 선한 천사와 그에 속한 자들은 하늘 도성으로 들어가고 그 반대의 부류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창조와 역사와 종말론적인 관계들에 대한 관점을 피력하였다. 또한 하늘 도성으로 예정된 자들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천사의 일부가 타락할 것을 아시고 미리 성도들을 예정하사 타락한 천사들이 남긴 공백을 보충하여 하늘 성도의 수가 부족하지 않도록 하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이런 시대 착오적인 성경 해석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빛의 창조가 곧 천사의 창조를 말하며, 빛과 어두움의 분리를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의 분리라고 보는 이러한 해석은 전혀 근거없는 우화적, 신비적인 것이어서 성경적이라 하기 어렵다. 더우기 어거스틴은 이같은 천사창조론을 뒷받침할만한 어떤 성경 구절도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자신조차도 천사창조론에 대한 성경의 근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시인하였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빛의 창조가 천사의 창조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빛과 어두움의 분리가 두 천사의 분리를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창세기 저자의 본의를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실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천사창조론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곧 자신이 천사창조론을 통해서 "우주와 인류의 시초와 영혼에 관한 크고 어려운 문제들을 충분히 논증했노라"고 말하며 성경적으로 허술한 천사창조론을 강하게 지지했던 것이다.

   천사창조론에 나타난 위와 같은 해석은 어거스틴 창조론이 갖는 어두운 맹점이다. 이는 어거스틴이 주장한 것과 반대로, 그가 우주와 인류의 시초에 관한 크고 어려운 문제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창조와 구원과의 관계, 창조에서부터 종말까지의 과정이나, 혹은 창조와 역사 등의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그럼으로써 어거스틴의 창조론은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만다. 곧 창조와 구원과의 관계에 대한 유기적 고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것이 어거스틴 창조론이 갖는 가장 큰 맹점이다. 어거스틴의 창조론에서 창조는 성경의 다른 주제들과 일치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

   어거스틴의 창조론에서 창조와 구원이 분열되어 있다는 지적은 신학적으로도 많이 비평되는 요소다. 바이너르트(W.Beinert)는 "창조신학"에서 밝히기를 어거스틴 창조론의 특징은 호교적이고 철학적인 특성을 지니며 창조와 구원이 분리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반면에 창조와 구원의 통일적 관점은 이레니우스에게 가장 치밀하게 수용되어 있다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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