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사역의 중심지_크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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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 5는 신부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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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경규 조회: 150회 댓글: 0건 작성일: 작성일2017-08-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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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는 신부의 수

  이미 밝힌대로 5는 거듭남의 수요 신부의 수다. 그래서 13,75는 주님이 땅에 임하여 신부를 얻고 혼인하기까지의 순서를 차례로 보여준다. 태초의 창조의 예수 1은 초림 때 3을 위해 땅에 오시고, 다시 재림 7로 임하여 3의 열매를 맺는 가운데 신부 5를 얻어 혼인을 치루니 13,75야말로 주님의 창조부터 혼인까지의 단계를 차례로 보여주는 수가 아닌가.

  그러면 주님께서 1, 3, 7로 오셔서 5의 신부와 혼인을 이루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와 한 영이 되고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인간과 한 가족이 될 것을 정하시고, 태초에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땅에 보내어 다시금 인간을 말씀으로 창조하는 새 창조의 역사를 행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을 두 번 창조하고 두 번 거듭나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것은 인간을 영의 존재로 만들어 영이신 하나님과 혼인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이 혼인의 목적을 위해 태초부터 종말까지 열심히 일하며 역사하신다. 당연히 예수께서도 주의 성도들과 함께 혼인을 이루기 위해 태초부터 재림까지 계속 일하며 역사하신다.

  * 주님은 인간과 한 영, 한 가족이 되는 5의 혼인을 위해 역사하신다.


1) 에베소서를 읽으라

  하나님께서는 필자에게 신부의 수 5를 가르치기 위해 다시 역사하셨다. 필자가 괌에서 7의 신랑에 대한 말씀들을 증거하고 한국에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마음 속으로 다시 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다시 괌에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기도하는 가운데 이유는 모르지만 괌에 다시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2015년 5월에 아무 계획도 없이 다만 주님의 뜻에 의지하여 다시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지만 괌에 도착한 지 두 달이 되도록 기도 외에는 아무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괌에 머문지 두 달이 찰 무렵, 예기치 않게 캄보디아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있었다. 그 때 비행기 안에서 선교사님이 성경을 읽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당시 선교사님은 주님께서 “에베소서를 읽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주셔서 밤낮없이 에베소서를 읽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나도 에베소서가 읽고 싶어 비행기에서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에베소서에 기록된 바울의 메시지가 절절한 음성이 되어 나의 가슴을 치니 주체할 수 없도록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론이며 그 요절은 1장 10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처럼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하늘과 땅을 통합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역사를 증거한다. 주님의 완전한 역사는 땅의 교회가 흠과 티가 없는 거룩한 교회, 영광스러운 교회로 설 때 그 완전함이 증거될 것이다.
 
  나는 에베소서를 읽고 묵상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가 완전해질 것을 확신하였다. 물론 땅의 교회는 스스로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한다 해도 흠과 티가 없는 완전한 교회(엡5:27)가 될 수 없다. 교회가 완전하게 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 즉 혼인을 이루는 길 뿐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남녀의 혼인에 관한 말씀을 전하며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 라고 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큰 비밀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는 마치 남녀의 관계처럼 오직 혼인을 통해서만 완전할 수 있는 것이 비밀이다. 또 하나는 그 혼인의 때는 언제 임할지 모르기에 비밀이다. 

  필자는 에베소서를 읽고 나서 이 서신을 보게 하신 성령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령께서는 지난 괌의 역사 가운데 이미 신랑의 형상을 보여주셨고, 이번에는 에베소서를 통해 혼인의 비밀을 보여주셨다. 이는 지금 땅에 혼인을 치를 7의 신랑이 임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지금이 바로 에베소서의 말씀이 성취되는 혼인의 때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 하나님은 에베소서를 통해 5의 혼인의 때가 되었음을 알게 하셨다.


2) 완전한 용서의 말씀

  하나님은 에베소서를 통해 지금이 혼인의 때임을 일깨우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로운 말씀을 주셨다. 그것은 마태복음의 ‘완전한 용서’에 대한 말씀이었다. 예수께서는 마18장에서 베드로에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며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이어서 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용서의 비유를 증거하셨다. 어떤 임금이 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붙잡아 빚을 갚기까지 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은 만 달란트 빚진 종에게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는 너희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며 교훈하셨다. 우리는 보통 이 말씀을 볼 때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넓게 용서를 해야겠구나 하고 쉽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그런 인간적인 관용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윤리적인 말씀이 아니다. 

  이 비유는 완전한 탕감 즉 완전한 용서에 대한 말씀이며 곧 영의 용서에 대한 말씀이다. 성경의 용서에는 육의 용서와 영의 용서 두 가지가 있다. 육의 용서는 예수의 피로써 죄를 씻고 칭의를 받는 용서를 말하는데 이 용서는 단점이 있다. 그것은 피의 용서는 죽을 때까지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는 일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육의 용서와 달리 완전한 영의 용서가 있는데 이는 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며 해방과 승리를 얻는 용서다. 영의 용서는 정확히 말하자면 피의 죄 사함을 받은 자가 다시금 떡의 말씀으로 회개하여 육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용서와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이런 영의 용서를 받는 자는 다시는 육신에게지지 않고 영으로 육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이런 자는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자가 아니며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는 말씀이 응하는 성도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의 영 곧 그 말씀의 인도를 받는 아들이 된 상태이기에 언제나 영으로써 육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한가. 어떻게 땅의 성도가 죄 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5:18) 라는 말씀처럼 그의 말씀으로 거듭난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요일3:9) 라는 구절처럼 말씀의 씨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으로 거듭나고 말씀의 씨가 그 안에 거하는 자가 바로 완전한 용서, 영의 용서를 받은 자다.

  그러나 아직 영의 용서를 받지 못한 성도의 신앙 생활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는 아무리 용서를 받아도 완전한 영의 용서를 받지 못한 상태이기에 언제나 죄와 육의 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을 크게 용서한다 해도 그에게 영의 용서를 전하지 못하는 이상 상대방을 온전히 용서하지도 못한다. 결국 그는 형제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용서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고 만다.

  필자는 괌에서 마18장의 용서의 말씀을 보았을 때 그 자리에서 이것이 완전한 영의 용서에 대한 말씀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필자도 과거에는 육의 용서밖에 알지 못하여 언제나 육의 어둠에 갇혀 슬퍼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이 육의 옥에 갇혀 영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용서하는 일도 불가능한 불쌍한 자였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에 성령께서 주신 불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 불의 말씀으로써 자아와 육신을 죽음에 넘기고 그 부정함을 소멸시킴으로 영의 회개를 하니 영의 용서를 받고 영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다. 그 후부터 완전한 용서를 아는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부터 용서하는 완전한 용서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필자는 이미 영의 회개와 영의 용서를 받은 상태였기에 괌에서 마18장을 통해 주신 용서의 말씀을 영의 용서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도 불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영의 회개와 영의 용서를 받는 그런 때가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 주님께서 괌에서 마18장의 용서가 영의 용서에 대한 말씀임을 알게 하셨다.


3) 5의 교회를 세우라

  필자가 마18장의 말씀을 받은 후에 세 번째 사건이 이어졌다. 괌의 선교사님이 갑작스럽게 영의 회개와 영의 용서를 받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선교사님은 자신도 영의 거듭남과 영의 완전한 용서를 받고 싶어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은혜로 거듭남을 경험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눠 보니 영으로 거듭난 자의 의식과 분별이 느껴졌다. 그래서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괌에서 세 가지 사건으로 필자를 인도한 것이 느껴졌다. 먼저 에베소서의 완전한 교회에 대한 말씀, 다음에 마태복음의 완전한 용서에 대한 말씀, 그리고 선교사님의 완전한 회개에 대한 사건들이 일련의 메시지처럼 보였다. 이것은 다시 말해 완전한 회개와 완전한 용서를 주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 일련의 메시지를 주신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 땅에 완전한 에베소 교회가 나타나 완전한 용서와 회개를 주는 일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첫째로 완전한 교회는 신랑의 혼인의 때가 되어야 나타날 수 있다. 둘째로 마18장의 완전한 용서를 전하려면 불의 말씀이 준비되어야 한다. 셋째로 선교사님처럼 완전한 회개를 하는 성도들이 나타나려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하다.
 
  필자가 이 세 가지 조건을 생각해 보니 이 모두가 필자에게 해당되는 사항임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이미 7의 신랑이 임한 것을 알고 이제 혼인의 때가 시작된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2004년부터 불의 말씀을 받고 마18장의 완전한 용서를 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선교사님을 인도하여 완전한 회개를 하는 모습을 보게 하시니 지금이야말로 완전한 교회가 나타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상황이 이쯤 되니 필자는 괌에서 벌어진 세 사건이 다름 아닌 완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세 사건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를 통해 완전한 교회에 대한 말씀을 주시고, 마18장을 통해 완전한 용서에 대한 말씀을 주시며, 선교사님께 완전한 회개의 은혜를 주시니, 이 세 사건 안에 성령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필자는 하나님께서 괌으로 부르신 일에 대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완전한 회개와 완전한 용서를 주는 완전한 교회를 세울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에베소 교회, 신부의 교회를 세울 소명이 필자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이상 괌에 머무를 필요없이 한국에 5의 신부의 교회를 세우고자 귀국을 서두르게 되었다. 

  * 괌의 세 사건은 한국에 5의 신부의 교회를 세우라는 성령의 메시지였다.


4) 대속죄일을 성취하라

  모든 일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는 법이다. 땅의 일도 순서없이 하면 혼란스러운데 하늘의 일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필자는 한국에 돌아온 즉시 5의 신부의 교회를 세우려 하였지만 하나님께는 정해진 순서가 있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신부의 교회를 세우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었다.

  성경의 절기론에 의하면 종말의 신부의 교회는 반드시 나팔절과 속죄일을 치러야 한다. 우선 나팔절은 적그리스도의 어둠과 미혹에 빠져 잠자는 교회들에게 속히 깨어 회개하라며 경고의 나팔을 부는 절기다. 그러면 나팔 소리를 들은 교회는 자신의 모든 죄와 부정함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완전한 속죄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속죄일이다. 종말의 교회는 이 두 절기를 치러야만 비로소 정결하고 거룩한 신부의 교회로 단장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필자는 나팔절은 이미 성취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필자는 괌에 가기 전에 ‘666의 폭로’ 라는 책을 쓴 바 있다. 666의 책은 이 시대의 잠자는 교회들에게 적그리스도의 어둠과 미혹에 빠져 나오라고 외치며 경고의 나팔 소리를 내는 책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육의 교회요 광야의 교회에 속한다. 저들은 홍해를 건너는 피의 거듭남만 알 뿐, 요단 강을 건너는 불의 거듭남을 알지 못하므로 대부분 출애굽의 백성들처럼 광야를 맴돌다가 멸망을 당하고 있다. 666의 책은 이런 광야의 교회들 즉 영적으로 말하면 영적 바벨론의 미혹에 빠진 교회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는 책이다. 그저 예수 피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미혹에 빠진 육의 성도들에게 불의 말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고 경고하는 나팔 소리를 내는 책이다.

  필자는 666의 책을 출판할 때 나팔절의 의미로써 공표하였지만 솔직히 그 때까지 속죄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속죄일을 언제 어떻게 지키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기에 그저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듯이 주님만 바라보는 상태였다.

  그런데 괌에서 메시지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갑자기 속죄일을 지키라는 주의 말씀이 임하였다. 필자는 부랴부랴 괌의 선교사님을 부르고 권사님, 전도사님, 필자 이렇게 네 사람이 모여 2015년 9월에 속죄일 절기를 치르게 되었다.

  원래 대속죄일이란 매년 7월 10일에 이스라엘이 지난 1년 동안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완전한 용서’를 받는 절기다. 이 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성막의 모든 부정함과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의식을 행한다.     

  그런데 속죄일의 절기를 생각할 때마다 드는 하나의 의문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이미 죄를 씻는 유월절이 있는데 왜 또 다시 죄를 씻는 속죄일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들은 두 번의 회개와 두 번의 용서를 받아야만 참 성도,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유월절과 속죄일은 모든 이스라엘이 두 번 회개하고 두 번 거듭날 것을 가르친다. 처음 유월절은 잘 아다시피 예수의 피로 사함받고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속죄일은 예수의 떡으로 회개하고 영으로 거듭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의 말씀 즉 그의 영으로 거듭나는 속죄일을 지나야 그 때부터 성도는 완전한 용서를 받은 영의 성도가 될 수 있다. 

  유월절과 속죄일은 성도의 죄를 씻기 위한 두 번의 속죄 과정이 있음을 가르친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죄를 씻는 약혼의 포도주라면, 속죄일 양의 피는 죄를 소멸하는 혼인의 포도주가 된다. 따라서 유월절의 피는 그 한계점이 뚜렷하다. 그것은 완전한 속죄가 아닌 임시적 속죄밖에 되지 못하며 유월절의 성도 역시 죄짓고 회개하는 일을 반복하는 가운데 완전한 회개를 하지 못하니 완전한 용서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속죄일의 피는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16:30)는 말씀처럼 모든 죄를 완전하게 씻는 은혜를 준다. 더욱이 속죄일의 속죄는 날마다 드리는 희생 제물의 피로 얼룩진 ‘성막’까지 완전하게 씻는 날이니 그야말로 모든 죄와 부정으로부터 완전히 거룩하게 되는 날이다. 

  속죄일이 이스라엘의 죄 뿐만아니라 ‘성막’ 전체를 속죄하는 절기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일에 법궤를 덮는 속죄소와 지성소, 회막, 번제단까지 모두 속죄를 받게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레16:16) 라는 말씀처럼 성막도 속죄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아닌 성막까지 속죄를 받도록 하셨을까. 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속죄일의 의미가 재림의 가을 절기가 이를 때 교회를 말씀으로 씻는 것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5의 신부의 교회를 세우라 하신 주님께서 먼저 속죄일 절기를 치르도록 하신 이유가 명확해졌다. 현재의 교회는 그 안에 너무도 부정하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차서 신랑이신 주님이 도저히 임하실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5의 신부가 될 교회는 가장 먼저 속죄일을 통해 완전한 속죄를 받고 깨끗하고 순결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만 거룩하신 주님과 한 몸이 되는 신부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 5의 신부의 교회는 대속죄일을 통해 완전한 속죄를 받아야 세울 수 있다. 


5) 13,75의 완결

  필자가 속죄일을 치렀다고 해서 구약의 절기처럼 속죄일 양을 잡아 피를 흘린 것은 아닐 것이다. 속죄일의 영적 성취는 육신의 죄를 쳐서 이기는 완전한 회개 즉 영의 회개로써 성취한다. 영의 회개로써 완전한 용서를 얻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성취해야 할 참 속죄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의 회개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영의 회개를 하기 위해서는 영의 회개로 인도할 수 있는 영의 말씀이 필요하다. 영의 말씀은 엘리야가 먹은 천사의 떡과 같이 성도의 내면에 있는 육의 것들을 소멸시키는 ‘불의 말씀’이다. 불의 말씀은 1의 신성의 말씀이므로 24의 성도들을 회개시켜 7의 성도로 만들 수 있다. 또한 불의 말씀은 4의 등만 가진 신부들에게 1의 기름의 말씀을 공급하여 5의 신부로 거듭나게 하니 불의 말씀이야말로 신부의 수 5를 완성하는 완전한 진리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의 말씀을 지난 2004년에 필자에게 허락하여 주셨다. 그 후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는 가운데 언제나 불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하며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이 속죄일을 성취하라 하시니 지체없이 불의 말씀을 통해 완전한 회개를 하고 완전한 용서를 받게 함으로써 신속하게 속죄일을 치를 수 있었다. 

  필자는 속죄일을 치른 후 이어서 서울 방이동에 ‘5나오스’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창립하였다. 나오스는 헬라어로 지성소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5나오스는 이 땅에 5의 거듭남을 전하고 5의 신부를 세우는 거룩한 지성소의 교회다. 또한 불의 말씀을 통해 완전한 회개와 완전한 용서를 전하여 깨끗하고 순결한 5의 신부를 세우는 교회다. 이렇게 하나님은 필자에게 속죄일을 성취하게 하신 후에 이 땅에 5의 신부를 위한 에베소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지금까지 증거한대로 하나님은 필자에게 13,75의 수의 의미를 순서대로 가르치시며 마지막으로 5의 신부의 교회를 세우도록 인도하셨다. 필자는 5의 교회를 세운 후에 하나님께서 13,75의 순서대로 차례로 인도하신 것을 깨닫고 놀라운 봉인의 수 13,75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이 13,75의 수의 봉인이 열게 하신 것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13,75는 재림 예수께서 이 수의 순서대로 땅에 임하심을 증거한다. 지금까지 본대로 주님은 창조의 1로부터 13,75의 순서를 따라 5의 혼인까지 차례로 땅에 역사하신다. 둘째로 13,75는 땅의 24의 성도들에게 5의 신부로 단장하는 과정, 구원의 과정을 가르친다. 24의 성도들은 인간의 목적이 예수의 형상 1에 있음을 인식하고 3의 초림과 7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속히 완전한 용서를 받는 영적 속죄일을 치러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5의 신부로 단장해야만 재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이 13,75를 주신 세 번째 의미는 바로 1335의 비밀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다. 만일 우리가 13,75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1335의 비밀은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1335의 봉인을 만나보기로 하자.

  * 13,75는 재림의 과정과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수요, 1335의 봉인을 여는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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