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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학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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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경규 조회: 3,347회 댓글: 0건 작성일: 작성일2010-07-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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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원류가 어거스틴을 넘어
 이레니우스와 바울에까지 소급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레니우스를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맞지 않다.
이레니우스가 가르친 창조론과 구원론은 개혁주의가 가르친 내용과 천지 차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 보면 이레니우스와 개혁주의는 거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개혁주의 신학의 원류는 사실상 이레니우스가 아닌 터툴리안이다.
특히 터툴리안의 원죄론과 칭의론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터툴리안은 말년에 몬타누스라는 이단에 빠져 정신을 못차렸다.
그는 지성은 있으나 영성은 없는 자라는 증거를 굳이 남기고 죽었다.

터툴리안의 원죄론과 칭의론은 키프리안을 거쳐 어거스틴에게 이어졌다.
어거스틴은 터툴리안의 칭의론을 개혁주의 신학의 원류로 완전하게 정착시켰다.

먼저 어거스틴은 전적타락의 의미를 거의 완벽할 정도로 파악하였다.
이 점은 대단히 깊은 통찰이다. 인간이 완전히 타락하여 자신의 구원에 대해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는 완전 무능력 상태에 빠졌고, 자유의지 역시 완전 타락하여
 오직 악을 행할 수 있을 뿐이라는 그의 인식은 인간론의 핵심을 관통하는거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전적 타락을 수용하지 않았던 알미니우스나 웨슬리의 인간이해는
 불완전한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신학적 기초 역시 인본주의라는 오명을 씻지 못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전적타락이라는 교리를 자유롭게 다루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자칫 하나님 예정 100%, 인간 의지 0% 라는 논리의 함정을 가져올 수 있는데
 실제로 어거스틴은 그 함정에 빠져 칭의는 100%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다고 주장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파괴된 예정론을 최초로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어거스틴은 전적타락과 신인협동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으나,
그러나 성경은 전적타락의 논리를 확고하게 내세우면서
 동시에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용의 지혜를 보이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나 인간의 타락한 자유의지가 갖는
 불의하고 부패한 종교적인 믿음을 성경이 멸시하지 않고 그것은 감싸안는다는 말이다.
인간의 부패한 육체의 믿음-실제로는 행위에 불과한 썩은 믿음을 받아 주는 것,
여기에 바로 전적타락과 신인협동이 함께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있다.

아무튼 어거스틴은 성경의 원죄론은 제대로 통찰하였으나
 그것으로 성경의 칭의론 - 전적타락의 인간이 어떻게 칭의를 얻는가 하는 칭의론을 구축하는데
 실패하여 그 무너지는 부분을 예정론이라는 논리로 땜질하는 악수를 두고 말았다. 

바로 이 어거스틴의 원죄론과 칭의론을 여과없이 수용한 자가 루터였고,
루터는 수도원 고행을 통해 어거스틴이 발견한 그 심오한 원죄론에 눈을 뜬 것까지는
 좋았으나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엄청난 모순으로 점철된 예정론을 꿀꺽 삼켜버린 욕심쟁이.

그 다음에 어거스틴이나 특히 루터가 어리버리하게 제대로 손대지 못한 개혁주의 성화론을
 드디어 칼빈이 손을 보기에 이르렀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카톨릭의 성화론에 밀리겠기에
 칼빈은 루터의 칭의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성화론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이 이름하여 ‘칭의성화 동시론’이라는 교리다.

칼빈의 '칭의성화 동시론'은 논리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그 논리를 좇아보면 아무도 그가 말한 성화에 이르지 못한다는게 문제다.
실제로 칼빈 자신도 자신의 성화론을 좇다가 모든 걸 다 잃은 자가 되었을 정도니...

이렇게 보면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것은 전적타락의 기초는 잘 놓았는데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도 칭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칭의의 비밀과정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칭의에 참여하는 반쪽짜리 칭의론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반쪽짜리 칭의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예정론을 곁들이고
 다시 그 안에 성화론까지 구겨 넣음으로써 한 몸에 머리 셋달린 기형아를 출산하여
 그것을 개혁주의 구원론이라 이름하고 판매하는 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학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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