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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강도의 범접할 수 없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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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경규 조회: 4,798회 댓글: 1건 작성일: 작성일2008-06-24, 12:39

본문

<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 >

  십자가 상에서 구원받은 강도의 믿음은 전도할 때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구원받은 강도는 죽기 전에 회개하여 그 즉시로 구원을 받았으며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는 곧바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강도의 구원은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자에게도 많이 제시된다. 성도가 때로 시험에 들고 약한 믿음으로 인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때 구원받은 강도의 예를 들며 구원은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그리스도의 공로로 전가받는 것이므로 믿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과연 이같은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며 강도의 믿음이 칭의의 구원을 뒷받침하는가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성경에 나타난 강도의 믿음은 그 반대의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 아래에서 강도의 믿음을 자세히 기술한 눅23장의 말씀을 살펴 보면 그 믿음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39~43)

  이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주의한다면 강도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을 보고 회개했다는 말은 도리어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받은 강도에게는 흉악한 사형수가 보임직한 폭력적 언사나 악감, 자기 비하, 원망, 혹은 절망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의 심리상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강도의 잘못된 것을 꾸짖어 바로 잡는 의로움(40절),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는 말 속에 담겨진 그의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과 영적인 일에 대한 주의와 분별력(40절), 우리는 행한 일에 보응을 받는다고 말함에서 나타난 자신의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41절),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음이 없느니라(41절) 라는 말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예수의 민간에 행한 많은 선한 일들과 천국복음에 대한 말씀들을 미리 알고 믿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강도는 자신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한 청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천국의 주인이심을 바라보고(42절) 주님께 의뢰하여 죽음 가운데 영생의 소망을 가진(42절) 자였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메시아관은 메시아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이 땅위에 현세적인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인식으로 팽배해 있었다. 그런 메시아가 도리어 로마의 힘에 의해 최악의 십자가형을 당한다는 것은 메시아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증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인식은 당시 이스라엘이 가진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0-42)고 소리쳤다.

  관원들과 로마 군병들도 이렇게 소리쳤다.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23:37)고 소리쳤다.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의 힘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메시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이스라엘에는 그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사실 때문에 고소를 받았으며(눅23:2) 예수님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적혔고 이를 보고 유대의 제사장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적으라고(요19:21) 하며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거나 흩어지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비웃고 희롱하였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네가 메시아거든 너부터 구원하라고 소리치며 이스라엘의 그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자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하늘의 왕이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특별한 믿음을 가진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구원받은 강도는 자신처럼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무력한 인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있다. 절대 메시아일리 없는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는 현실 속에서 강도는 예수가 하늘의 왕이심을 믿었으며 비슷한 죽음의 처지에 놓인 예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였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도의 고백은 놀라운 것이다. 강도는 “당신의 나라이 임하실 때에” 라는 고백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당시의 이스라엘이 믿던 것처럼 당장 현세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의 죽음으로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계시며 이제 하늘의 왕으로 계실 것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도는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을 거부하고 오직 영의 눈으로 예수를 바라 보았으며 사람들의 말이나 자신의 경험을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관점처럼 바라보고 소망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과는 상황과 차원이 다르다. 강도의 고백은 오늘날의 신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전도의 권유를 통해 믿는 초신자류의 영접고백이 아니다. 강도는 아무도 메시아임을 믿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메시아임을 고백한 것이며 인간의 의식과 현실을 뛰어넘는 영적인 믿음을 보여준 것이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강도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다. 찬송가 중에는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라는 찬송가가 있지만 성경의 기록에는 강도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없다. 성경 어디에도 강도가 “저는 죄인입니다” 라든지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기록한 부분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라는 구절이 강도가 회개한 구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강도가 예수님께 고백한 말이 아니고 다른 강도를 꾸짖을 때 한 말이다. 그것도 그 자리에서 갑자기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강도는 십자가에서 갑작스럽게 회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예수의 복음을 듣고 그것이 참임을 믿고 있었다. 그 분이 메시아임을 알고 있었으며 같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악한 강도와 믿음없는 세상을 꾸짖은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강도는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거부하고 믿음으로써 예수를 소망함으로 당대의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뛰어난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도의 특별한 믿음을 오늘날의 초신자들의 믿음과 동일시하며 마치 강도가 죽기 전에 회개하여 그 즉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많은 상황과 사실적 근거들을 무시하고 강도의 믿음을 단지 죽기 전에 회개하여 구원 받은 초신자의 믿음쯤으로 애써 이해하려 한다. 강도의 믿음은 그런 초보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가 파렴치하고 극악무도하였으나 순간적 은총으로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민란에 관계된 정치범으로써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자에게만 해당하는 십자가형을 받은 자이며 예수님도 로마에 대항한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를 받으신 것이고, 십자가형을 면한 바라바는 로마에 대항하여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한 자였다.(막15:7) 강도는 요즘 말로 하면 민족주의자요 애국투사였다. 그는 현세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다시 예수 안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소망하게 된 자였다.

  강도는 죽기 직전에 회개한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으로 안식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였다. 마치 온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밤새 곡성할 때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담대하게 외친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였다. 사람의 눈과 믿음으로 현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과 온전한 믿음으로 현실을 보고 세상을 뛰어 넘는 믿음을 가진 자였다.

  혹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27:44)는 마태의 기록을 근거로 강도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욕하다가 나중에 회개의 은혜를 받아 그 자리에서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태는 원경에서 전체적으로 기록한 것이고 누가는 세부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기에 서로 표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누가가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 정황을 살펴보면 구원받은 강도는 십자가형을 당하기 이전에 이미 예수가 민간에 행한 일의 의로움을 알고 있었고 그런 인식이 있었기에 사전에 예수가 메시아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만일 강도가 욕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회개했다면 그럴 만할 만한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어떤 능력이나 이적을 보이셨는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절대 메시아일리 없는 증거와 무력함 만을 보이고 계셨다. 그렇다면 강도는 무얼 보고 무얼 믿고 갑자기 회개했다는 것인가. 회개할 아무 근거가 없을 뿐아니라 도리어 욕을 더 해야하는 상황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강도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는 자신이 예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던 모든 것조차 의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아무리 메시아임을 확신하고 있었더라도 그 반대의 증거가 확연히 나타난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강도는 자신이 보고 있는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오직 견고한 믿음으로 확신 가운데 있던 사람이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나오기 어려운 믿음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한 믿음이다. 영의 눈으로 보고 분별하는 영의 믿음이며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믿음이었다.

  답은 하나다. 강도의 믿음은 사람의 믿음, 육의 믿음이 아니었다. 육의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미 사방에서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조롱하고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강도는 영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성령의 눈을 의지하여 현실을 보고 있었다. 이것은 말씀으로 거듭난 영을 가진 자에게만 가능하다. 예수의 영에 공명하고 하나님의 영에 공명하는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구원받은 강도야말로 아브라함이나 새 이스라엘처럼 견고한 믿음을 갖고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 마음의 할례를 받은 진정 거듭난 자였던 것이다.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하늘의 메시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준비된 자였다. 그것은 성령의 예비하심과 인도하심이었다. 그것은 마치 성령께서 아기 예수를 위하여 시므온과 안나를 예비하심과 같았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노구의 몸을 이끌고 죽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증거하였다.(눅2:30) 안나는 과부된 지 팔십사 년 동안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그녀도 준비된 믿음으로 아기 예수를 보았고 아기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이 두 사람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아기 예수에 대해 증거한 것처럼 강도 역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죽음 앞에 계신 메시아를 온전한 믿음으로 증거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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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규님의 댓글

문경규    작성일:

이 글은 제가 쓴 < 사도의 창조론 > 에 있는 내용을,
이번에 출판 예정인 < 교회 최대의 영적 비밀 > 을 위해 조금 교정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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