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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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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경규 조회: 2,663회 댓글: 1건 작성일: 작성일2007-06-0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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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부터 한국교회에 관상기도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그 바람이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관상기도는 한국교회의 '영성의 빈약함에 대한 반성'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한국교회가 그 외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한 내면의 공허함이 드러나면서
 영성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써 관상기도가 대두된 것이다.

관상기도란 하나님 안에서 쉼을 가지고 친교,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는 통성이나 소리를 사용치 않고 지성이나 의지를 사용하기 보다
 침묵 가운데 나를 비우고 직관으로 주님과 대면하고 일치하려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는 삼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첫째로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 단계로써,
자신의 모든 생각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는 단계이다.
둘째로 고요히 기도하는 단계로써,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단계이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을 응시하는 것이다.
셋째로 영적인 체험의 단계로써,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열고
 그 분의 음성과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다.

수도원자들이나 관상가들은 이 관상기도야말로 영성의 꽃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관상기도가 성도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비판 >
1. 첫째, 관상기도는 경건한 모양새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고요, 침묵, 절제, 비움, 묵상의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거룩하거나 영성의 깊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성의 형태가 영성의 깊이를 담보하리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은거하는 수도원주의나 명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 속에서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영성이다.

2. 둘째, 관상기도는 성경의 근거가 희박하다. 성경에는 관상으로 하나님을 만나거나 메시지를 받는 샘플이 없다. 실제로 관상기도는 명상에 가까운 것이지 성경이 말하는 묵상의 의미는 되지 못한다. 성경이 밝히는 묵상은 적극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써 하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지각적인 활동이다. 반면에 관상기도는 침묵하고 고요하며, 자기 의지나 생각을 최대한 비우고 타의적으로 메시지를 받으려는 활동이다. 이러한 비의지적인 활동은 의지를 수동적, 무아적으로 만들어 주관적 느낌에 사로 잡히거나 거짓 영에 이끌리기 쉽게 만든다.

3. 셋째 관상기도는 이교적 특성이 강하다. 침묵, 비움, 직관, 느낌으로써 타의적 메시지를 받으려는 수동성은 자신의 의식을 내부로 향하게 만든다. 그것은 성령보다 자신의 자아와 대면하도록 만든다.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덮힌 자기 자신이다. 성령의 메시지는 그렇게 마음 안의 고요 속에 들어 앉아서 받는 것이 아니다. 고요와 침묵, 비움 속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 성령의 메시지는 때와 장소와 방법을 가리지 않으신다.

4. 넷째로 관상기도는 메시지가 혼란스럽다. 실제로 하나님이 메시지를 주시는 방식은 다양하며 그것은 우리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 가운데 인식된다. 이러한 영의 메시지는 영적 분별력과 장성한 믿음 가운데 있는 자들이 알아듣는 것이지 믿음이 약한 사람이나 영성이 부족한 성도는 그 뜻을 분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거에 큐티운동이 드러낸 문제 중에 하나가 믿음이 약한 자들이 주관적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는 문제였다. 관상기도는 큐티보다 훨씬 더 주관적, 신비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것은 자아가 부정되는 대신에 자아의 활동을 해방하고 재발견시키며 성령의 메시지 대신 자신의 느낌에 사로잡히기 쉽게 만든다.

5. 다섯째 관상기도는 영성이나 영성의 전통과 거리가 멀다. 관상기도는 기도 및 영성활동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영성훈련의 주요한 방법이 되거나 깊은 기도에 이르는 방도는 되지 못한다. 사실 관상기도와 영성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관상기도는 도리어 혼란을 주거나 해가 되기 쉬운 방법론적 기도이다.

이런 명상적 기도활동이 기독교 영성과 비례한다는 주장은 도데체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평화와 해방을 맛보며 그 고요함에 침전되는 것이 기독교적이요 성경적 영성이란 말인가. 그러한 훈련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일치하는 깊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기독교를 한낱 명상종교의 하나로 이해하는 자에 불과할 것이다. 

관상기도가 나름의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을 외부적 소용돌이로부터 내부적 반성으로 이끄는 점일 것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그동안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목표에 몰두해 왔다. 특히 영성훈련에 있어서도 말씀을 앞에 두고 진지한 묵상과 성찰을 하기보다 목사들이 가르치는 해석에 일방적으로 떠밀려 왔다. 양심과 진실을 붙들고 말씀을 상고하다보면 우리의 영성이 얼마나 매마른가를 쉬이 알 수 있는데도 그저 외적 소란에 정신이 팔려 우우 하고 함성을 지르며 함께 몰려다닌 것이다.

한국교회의 내면적 영성은 해갈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령의 뜻을 배우려는 간절함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종교적 방법이 아닌 성경적 방법 안에서 열려져야 하겠다. 

댓글목록

좋은땅님의 댓글

좋은땅    작성일:

음,, 진리의 영되시는 성령님에 도우심의 분별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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